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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명 :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
· 위 치 : 아시아 남동해안 (위도 18-22N, 경도 121-38E)
· 수 도 : 마닐라(인구 1,110만명, 면적 38.6㎢)
· 정 부 : 대통령중심제 6년 단임
· 의 회 : 양원제 상원 24석(6년), 하원 287석(3년)
· 군 대 : 11만 4천명(육군 7만7천, 해군 2만2천, 공군 1만 5천)
· 도 시 : 메트로 마닐라(1,110만명), 세부(100만명)
· 인 구 : 97,976,603명(2010년) 인구증가율 2.04%
· 면 적 : 300,400㎢ (한반도의 1.3배) 7,107개의 도서로 구성, 전체의 65%가 산악지대 루손(104,688㎢)과 민다나오(101,999㎢)가 총 면적의 65% 차지
· 기 후 : 고온 다습한 아열대성 기후(연평균 27℃) 크게 건기(12-4월)와 우기(5-11월)로 나뉨
· 민 족 : 말레이계가 주종이며 중국, 미국, 스페인계 혼혈 다수
· 종 교 : 가톨릭(83%), 개신교(9%), 회교(5%), 불교 및 기타(3%)
· 언 어 : 영어 및 타갈로그어(Tagalog)
· 화 폐 : 1페소(PHP) = 26.02원
· 나라꽃 : 삼파귀타(Sampaguita)
• 스페인 정복 이전시대(~1571년)

선사시대부터 1571년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고대 필리핀이라고 일컫는다. 필리핀의 초기 원주민 네그리토(Negrito)가 언제부터 필리핀 땅에 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체로 3만 년 전에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등지로부터 이주해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기원 전후 시기에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해안 지역에 살고 있던 네그리토인은 제철과 관개 기술을 가지고 있던 말레이계에 밀려 산악 지대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이들 필리핀 원주민들은 산악과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여건에 따라 정착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소규모 바랑가이(Barangay)를 단위로 생활했다. 바랑가이는 30가구~100가구 정도로 구성된 가족 중심의 부락공동체로, 다투(Datu)라는 우두머리를 두고 있었다. 각 바랑가이의 지배자격인 다투는 최고의 행정권자이자 입법가, 재판관, 군사 지휘자로 대부분의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 필리핀에서는 통일된 국가나 중앙정부가 성립되지는 않았다. 스페인이 정복할 당시의 필리핀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14세기 이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무역을 통해 필리핀에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으로 이주해온 이슬람교도들은 술루(Sulu) 제도에서 민다나오(Mindanao) 섬 일대에 걸쳐 정착하여 이슬람 왕국을 세우고 이 일대의 무역을 통제하기도 했다. 16세기 중반에는 루손(Luzon) 섬 지역까지 이슬람교도들이 퍼져나갔으며, 술탄(Sultan) 또는 라자(Raja)에 의해 지배되는 소규모 영토의 국가가 건립되기도 했다. 또 송나라와 명나라의 상인들과도 교류가 있었는데, 특히 정화(鄭和)의 원정 당시 명나라는 6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세 차례에 걸쳐 필리핀을 정벌하기도 했다.

• 스페인 식민지 시대(1571년~1898년)

스페인의 필리핀 정복 필리핀의 역사에서 스페인 식민지 시대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정복한 1571년부터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이 미국으로 이양된 189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필리핀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 이후부터이다. 필리핀을 처음으로 유럽에 알린 사람은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세계 일주에 나선 포르투갈의 항해가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었다.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의 사마르(Samar) 섬에 상륙한 이래 스페인은 수 차례에 걸친 원정 끝에 1571년에 마침내 필리핀을 정복했다. 그리고 이 섬나라의 국명을 당시 스페인의 국왕이던 펠리페 2세(Felipe II)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Philippines)으로 정하고, 마닐라에 총독을 두어 이후 327년간이나 지속되는 식민 지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식민 지배는 스페인이 직접 통치하는 방식이 아닌 멕시코 총독을 통한 간접 통치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페인의 식민지 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하는 조짐이 보이자 외세에 반대하는 필리핀 민중의 민족주의 정신이 결집되기 시작했다. 1860년에 스페인에서 내란이 발생하자 필리핀에서도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이 나타났다. 1892년에는 ‘필리핀민족동맹(La Liga Filipina)’이 조직되어 사회개혁을 시도했으며, 비밀결사조직 ‘카티푸난(Katipunan)’의 무장봉기도 일어났다. 나아가 1896년부터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필리핀의 독립운동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1869~1964) 장군은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하자 1898년 6월 12일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미국 식민지 시대(1898년~1946년)

미국·스페인 강화조약필리핀의 역사에서 미국 식민지 시대는 미국-스페인 전쟁 후 체결된 미국·스페인 강화조약으로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1898년부터 필리핀이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포한 1946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미국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필리핀 독립을 돕기 위해 스페인을 패퇴시키고도 1898년 12월 10일 파리조약에서 2000만 달러에 필리핀 지배권을 넘겨받는다. 이렇게 하여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에서 다시 미국의 식민지로 넘겨지는 처지가 되었다.

필리핀의 독립운동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장군은 필리핀의 독립을 선포하고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미국은 필리핀 점령을 위해 지상군을 파견하여 극렬하게 저항하는 필리핀인 60만 명을 학살했다. 당시 필리핀 주둔 미군 사령관이 아서 맥아더 주니어(Arthur MacArthur, Jr., 1845~1912)로, 그의 셋째 아들은 1945년 8월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후 한국전쟁 때는 UN군 최고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이다. 아기날도가 이끄는 무장 독립운동은 1899년부터 190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1901년 3월 아기날도 체포를 기점으로 점차 소멸되었다.

점진적인 자치 허용미국의 지배 아래에서 필리핀의 정치 및 행정 체계는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907년에는 최초의 의회선거가 실시되었고, 1916년에는 양원제 의회가 도입되었다. 1934년에는 미국 의회가 타이딩스-맥더피법(Tydings-McDuffie Act)을 통과시킴으로써 10년 후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보장받기도 했다. 1935년 11월 15일에는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uis Quezon, 1878~1944) 대통령의 자치정부(Commonwealth of the Philippines)가 수립되어 미 자치령 정부, 즉 독립 과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 일본의 필리핀 점령(1942년~1945년) 및 독립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일본군이 마닐라를 점령했다. 이어 5월에는 코레히도르(Corregidor) 섬이 일본군에 점령되었고, 필리핀 주둔 미군이 일본군에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필리핀은 일본의 통치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1943년 10월 14일, 필리핀에는 조제 파치아노 라우렐(José Paciano Laurel, 1891~1959)이 이끄는 괴뢰정부가 수립되었는데, 바로 필리핀의 제2공화국이 출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4년 10월 20일,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레이테(Leyte) 섬에 진주하면서 필리핀 영토 내에서 미국과 일본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자국 영토 안에서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전투로 인해 마닐라는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00만 명 이상의 필리핀인이 목숨을 잃었다.

1945년 2월, 미군이 다시 마닐라를 점령하면서 미국의 자치령 정부가 부활하게 되었다. 맥아더 장군은 1945년 2월 3일, 세르히오 오스메냐(Sergio S. Osmeña, 1878~1961) 대통령에게 자치정부를 이양했다. 1946년 7월 4일, 마침내 필리핀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독립국가 필리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에는 마누엘 로하스(Manuel Roxas, 1892~1948)가 당선되었으나 로하스 대통령은 1948년 재임 중 사망했다.

• 마닐라
메트로 마닐라는 필리핀 7,107개 섬들을 아우르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지다.
각각 고유의 지방색을 경험할 수 있고, 다채로운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메트로 마닐라를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도시로 만든 바탕이다. 메트로 마닐라의 거리는 화려한 지프니와, 덜컥거리는 버스 그리고 세련된 유선형의 자동차들이 뒤섞여 살아 숨쉬는 듯 활기가 넘친다. 구 마닐라에 있는 인트라무로스와 차이나타운에서는 마차가 교통이 혼잡한 거리를 보란 듯이 시원하게 왕래한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고층 빌딩들이 스페인 식민지 당시의 건축물 바로 옆에 세워져 있으며, 용 모양의 지붕과 정교하게 지어진 저택들은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의 명예와 부를 보여준다. 현대적인 쇼핑센터 옆 거리에서는 바쁜 인파들 속에 행상인들의 모습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번잡한 재래시장은 평온한 녹색 공원, 성스러운 분위기의 성당 옆에 위치해있다. 메트로 마닐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으로 관광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성당, 극장, 그리고 박물관은 필리핀 고유의 역사와 문화에 사람들을 집중시키려는 듯 경쟁적으로 서로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호화스러운 음식점과 길거리 식당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신기하고 맛있는 요리들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트렌디 바와 아늑한 커피샵은 여흥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골프 코스와 컨트리 클럽 그리고 리조트들은 필리핀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재미와 휴식을 제공해 주며, 어느 곳 에서든 필리핀 사람들은 친절하고 유쾌하게 관광객들을 환대해 주고 있다.  

리잘공원 (Rizal Park)
58만M의 드넓은 대지 위에 꽃과 분수,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도시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필리핀의 독립영웅 호세리잘(Jose Rizal)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리잘공원이 시작되는 곳은 리잘 기념탑이다.



이곳에는 호세리잘이 처형되었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기념탑 건너편의 잔디에는 들소상과 물소상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탑을 뒤로하고 공원안으로 들어가면 큰 직사각형 모양의 연못과 분수가 있고 연못 왼편으로는 중국정원, 일본정원이 있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 성벽도시” (Walled City)로 불리는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 중심부를 흐르는 파시그강의 남쪽 제방을 따라 16세시 말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웠다. 성벽 길이는 약 4.5 킬로미터, 내부 면적은 약 19만 4천평으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주지, 교회, 학교, 정부청사가 있었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여 1898년 미국에 점령당할 때까지 번성하였다.



그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고 1945년 필사적으로 대항하던 일본국에 대한 미국의 포격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폐허로 변한 성벽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1979년 4월 대통령령을 제정, 인트라무로스를 중요한 사적지와 관광지로 복구하기로 결정하였다. 인트라무로스 관광에 관한 안내는 산티아고 요새에 있는 인트라무로스 방문센터에서 담당한다. 이 방문센터에서 인트라무로스의 관광이 시작되고 각종 안내자료를 제공하여 이곳의 역사를 자에히 소개하는 18분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 30분, 1시간, 혹은 2시간 짜리 3종류의 관광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데 충분히 관찰하려면,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적어도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카사 마닐라 박물관(Casa Manila Museum), 리잘 성지 박물관(Rizal Shrine Museum), 산아구스틴 교회와 박물관(San Agustin Church and Museum), 마닐라 성당(Manila Cathedral)등은 둘러보아야 한다.  

산티아고 요새 (Fort Santiago)
산티아고 요새는 스페인 군대의 사령부이자 감옥으로 쓰였던 곳이다. 아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잔디밭 주위로 두터운 성벽과 창고, 탄약고, 감옥 들이 배치되어 있다. 잔디밭옆 쇠창살이 박혀있는 작은 감옥이 있는데, 그 앞의 길바탁에 박혀있는 사람의 발자국이 눈길을 끈다.



이것은 호세리잘이 감옥에서 처형장으로 끌려간 여정을 표시한 것으로 리잘공원까지 이어져 있다. 산티아고 요새잔디밭 반대편으로는 리잘 기념관이 있는데 1/2층에 걸쳐 리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북쪽 성벽에는 그의 유명한 악명높은 지하감옥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다.
지하감옥은 바다보다 낮게 파여 있어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 했다. 리잘 기념관 안에는 리잘의 ’마지막 시’원본과 민용태 교수에 의해 번역된 동판이 기증되어있다.  

마닐라 성당 (Manila Cathedral)
산티아고 요새를 가로질러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에 이른다. 1581년 건축된 후 화재, 지진으로 손상돼 6차례에 걸쳐 개보수됐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우아한 석조술을 엿볼 수 있다. 창문은 장미 장식 지붕은 착색유리 장식으로 되어 있고 내부의 벽은 모자이크의 예술을 가미하였다.



아구스틴 성당 (San Agustin Church)
1571년 건축,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정문에는 정교환 조각이 새겨졌고 강단을 비롯한 교회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됐다. 18세기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하다. 마닐라의 첫 번째 총독인 미구엘 로페즈데 레가즈피 장군의 무덤과 스페인 정복시대의 유물이 발견됐다. 1898년 스페인이 미국에 항복하는 조인식이 거행됐으며 수도원은 인상적인 스페인 시대의 그림과 조각품, 가구, 서적 등을 소장하고 있다.
성 아구스틴 박물관 개관시간 : 매일 오전 9시 - 정오, 오후 1시 = 오후 5시



카사 마닐라 박물관 (Casa Manila Museum)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스페인 시대 부유층의 삶을 조명한 곳, 그들이 사용하던 가구와 다양한 장식품이 소장돼 있다. 개관시간 :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6시



리잘 성지 박물관 (Rizal Shrine Museum)
호세 리잘 박물관, 산티아고 요새내에 위치한 2층 건물로 스페인 포병대가 막사로 사용하던 곳, 1층에는 리잘이 갇혀 지내던 감방이 있다. 리잘이 소유하던 예술품, 책, 원고, 곤충채집, 의상을 비롯한 개인용품의 소장돼 있다. 

나용 필리피노 (Nayong Pilipino)
필리피노의 민속촌, 고유한 삶의 양식과 다양한 문화를 지닌 여러 지역을 모두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4만평의 초지 위에 필리핀 원주민들의 전통과 문화를 한눈에 섭렵할 수 있게 재현해 놓은 곳으로 마닐라 국내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다.



다음과 같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여섯 지역의 생활 양식과 가옥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타갈로그, 비콜, 코딜레아, 일로코스, 비자야, 민다나오/술루 지역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수공예술을 조명하는 미니 수족관과 조류관, 50종이 넘는 희귀 난초를 전시한 오키다리움(Ochiddarium)이 있다. 나용 필리피노 민속가무단의 민속가무단의 민속춤 공연은 매주 토, 일 오후 2시 30분과 4시, 장소 : 민다나오 지역관

• 보라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태양. 그리고 시원한 감촉으로 와닿는 부드럽고 하얀 보라카이의 화이트 샌드 비치. 보라카이는 이처럼 뜨거움과 시원함이 부드럽게 공존하 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한번쯤 직접 거닐며 느껴보자. 보라카이는 청록색 빛깔의 바다와 4킬로미터에 달하는 눈처럼 곱고 깨끗한 백사장이 있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중 하나로 꼽힌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섬은 인적이 드문 장소를 꺼리지 않는 배낭여행자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1990년도 까지는 전기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입소문으로 모험을 즐기는 외국 관광객들 이 하나 둘씩 찾아들면서 현재 보라카이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현재는 고급 호텔, 음식점, 바(Bar)를 지어 수천명의 필리핀과 외국인들을 매혹 시키고 있다.

백 사장은 보라카이 섬의 심장부이다. 세련된 바와 아늑한 음식점들이 해변가에 길게 널려있으며 일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최적의 지점 에 위치되어있다. 세계적인 요리 역시 맛볼수 있다. 이 섬은 각종 회의와 이벤트 장소로도 유명 하다. 더 깊은 보라카이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마녹마녹 비치 (Manoc-Manoc Beach) 쪽으로 걸어가 보자.

가는 길목에는 닭싸움 또는 타리파파 마켓 (talipapa market)을 구경할 수 있다. 아크란에 있는 보라카이 섬은 바나이 섬 북서쪽에서 약 2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 은 가로폭이 약 7킬로 정도 된다. 이 섬의 기후는 아미한 (북동의 바람)과 하바갓 (남서풍 몬손)으로 나뉘어 있다.

날씨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아미한 시즌은 대체로 9월/10월에서 5월/6월까지이고 그 외는 모두 하바갓 시즌이다. 온도는 아 미한 시즌때 약 90화씨까지 올라가며, 하바갓 시즌에는 약 68화씨까지 올라간다.

• 세부
세부는 마닐라 남쪽에서 약 587 Km 떨어진 비사야스(Visayas) 중앙에 위치해 있다.



225 Km 길이의 섬으로 동편에 레이테 (Leyte)와 보홀 (Bohol)이 접해있고 서쪽 측면에는 네그로스 (Negros)섬이 위치해있다. 또한 가장 큰 세 개의 섬인 중 막탄과 반타얀, 카모테스섬 외 16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여있다. 세부는 좁은 해안선과 석회암 평야지대,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은 언덕들이 주요 특징이며, 실제 숲 면적은 적은편이다. 메트로 세부는 세부(Cebu), 탈리사이 (Talisay), 만다웨 (Mandaue), 라푸-라푸 (Lapu-Lapu) 시티로 구성되어있다.

세부 시티는 필리핀 남부 통상무역의 중심지이며 국제 화물 항구는 메트로 마닐라를 제외하면 가장 활발하게 상업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또한 여러 국내외 회사들의 중심지로서 산업 부품 지역과 콜센터로 인해 급성장 하고 있다. 그 외 다른 섬들은 코코넛, 옥수수, 망고, 쌀, 그리고 설탕 등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세부아노”(Cebuano)는 이 지방의 토속 언어이며 현재 세부아노는 필리핀 중심부와 남쪽에서 공통어인 타가로그어 보다 많이 통용되고 있다. 타가로그와 영어 역시 널리 통용된다. 세부의 날씨는 비교적 일정한 편이다.

섭씨 27도의 무난한 기온과 열대 기후를 갖추었다. 가끔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며 가장 선선한 달은 10월에서 12월이다. 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 - 페르디난도 마젤란이 1521년 4월 21일 필리핀 최초의 그리스도 교도가 된 추장 라자후마본 (Rajah Humabon)과 그 일족들이 페드로 발데라마 (Fr. Pedro Valderama)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 보홀
보홀 섬은 필리핀 군도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 섬 이름은 스페인 탐험대를 이끈 미겔 로페즈 데 레가즈피와 추장 다투 시카투나가 산두고 (Sandugo)라 불리우는 혈맹을 맺은 지역인 보올(Bool)에 이름을 따와 명명되었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보홀은 “레시덴시아”(residencia)로 알려졌으며, 세부 정치의 일부분으로 여겨졌다. 1595년 예수회 사절단으로 선정되었고 1854년에는 독립적인 정치 집단으로 변화되었다 . 또한 이 때에 2개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반란이 보홀에서 일어났다.

1621년 지방 성직자가 이끈 탐블론 반란 (Tamblon Uprising)과 1744년부터 1829년까지 필리핀 역사상 가장 길었던 반란 다고 호이 폭동 (Dagohoy Rebellion)이 있었다. 그 후 1900년 3월 미국 44대 육군 대대가 타그빌라란 시티에 도착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보홀 은 일본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1945년 4월 11일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보홀 섬은 비사야의 또 다른 주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는 열대지방 안식처이며,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만과 백사장이 있다. 다이빙을 할수있는 환상적은 명소들과 몇 세기 지난 오래된 성당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보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힐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중에 하나인 ‘탈시어’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리카삭 섬 (Balicasag Island)은 필리핀에서 많은 놀라움을 주는 다이빙 명소 중 하나이며 풍 부하고 다양한 해양 생물들의 주거지이다.

계절에 따라 고래들이 해안가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돌고래는 매년볼 수 있다. 원주민들은 보홀라노스 (Boholoanos)라 불리우며 핀타도스 (Pintados)의 후손들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이 이곳에 발을 딛기 오래 전부터 이미 중국과 무역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 공동묘 지는 당나라시대 유물들이 타그빌라란 (Tagbilaran), 만사사 (Mansasa), 팡라오 (Panglao), 그리 고 다우이스 (Dauis)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 엥겔레스
앙헬레스시는 수도인 마닐라가 위치하는 루손섬의 중부에 위치하고, 팜팡가주에 속하며 주도인 산페르난도에서 16KM떨어진 인구 약40만의 도시이다.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딸락과 누에베시아가 위치해있고 남쪽으로는 불라칸, 서쪽으로는 삼발레스에 둘러싸여 있는 평원지대에 세워진 도시로, 총면적은 6,432.82헥타르, 해수면이 478피트에 달해 홍수나 태풍기간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은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왕복 4차선 고속도로로 마닐라 퀘존까지는 50분정도 걸리고 북쪽으로 바기오, 서쪽으로 수빅까지(고속도로) 도로가 잘 발달 되어있다. 또한, 수빅과 더불어 필리핀의 유일한 경제특구인 클락특별경제지구(CDC)가 있어 많은 외국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지금도 한창 홍콩이나 마카오를 모델로 투자개발 중에 있다. 클락특별경제지구는 약 33,000헥타르의 크기로 거의 싱가포르와 비슷한 크기이며, 인천공항으로의 주5회 직항이 있는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국제공항(클락공항)이 있는 중부루손의 교통중심지이다.

교육시설 또한 3개의 대학을 포함한 많은 수의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를 갖추고 있으며, 중국인학교, 인터네셔널스쿨 등이 있어서 많은 한국인들이 연수 및 유학을 오고 있는 실정으로 올해 안에 문을 여는 것까지 반경 한 시간 거리에 13개소의 골프장, 많은 호텔 및 카지노, 리조트, 각 국의 음식점등 제반 인프라가 상당히 잘 갖춰진 곳이라 할 수 있다.

• 팔라안
마지막 비경이라고도 알려져있는 팔라완은 버진 섬 (Virgin Island)의 미니 군도 이다.



아름다운 비치의 황량함은 팔라완의 산악 지리적 위치와 대조를 이룬다. 피곤한 여행객들에게는 평안과 고독함으로 매혹시키는 반면 정열적 모험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로 여겨진다. 팔라완 섬은 신성하게 보호되어야 할 장소로 선언되었다. 폭포, 훌륭한 다이빙 장소, 웅장한 산, 원시 시대 동굴, 자연 그대로의 비치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다양하고 화려한 해양 생물이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이국적 동식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팔라완의 매력이다.

지리적으로 팔라완은 마닐라 남서쪽에서 약 58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도로 섬 북쪽, 보르네오의 남쪽, 중국해에서 서쪽, 그리고 수루 해양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총 면적은 1,489,655 헥타르이며 부수안가 (Busuanga), 쿠리온 (Culion), 리나파칸 (Linapacan), 쿠요 (Cuyo), 카가야네스 (Cacayanes), 바라박 (Balabac) 섬 주위에 있다.

북쪽과 남쪽 지역과 서쪽 전체 해안 지역에는 두종류의 날씨가 있는데, 6달 동안의 건기와 6달 동안의 우기가 있다. 반면, 동쪽 해안은 짧은 건기가 있으며, 그 외 나머지는 우기 철이다. 남쪽은 날씨 변화가 거의 없으며, 북쪽의 팔라완은 7월에서 8월 사이 폭우가 많이 내린다. 여름철에는 팔라완이 한 철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3월에서 7월초 바다가 잠잠할 때는 바다여행으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 다바오
다바오 시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생활의 도시이다.



땅 면적은 244,000헥타르 크기로 필리핀 남쪽에 위치해있으며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다. 다바오는 적도에 근접하며 북위 6도58분, 동경 125도 14분에 있다. 다바오는 마닐라로부터 남동쪽 588마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다바오 시는 총 11개의 행정 구역과 183개의 공동 사회로 나뉘어져 있으며, 평균 온도는 20.8도에서 32도 사이이다.

다바오 시는 풍부한 물, 비옥한 산과 계곡의 천연 자원으로 경이로움이 가득차 있다. 국가의 자부심인 아포 산 (Mt. Apo), 필리핀에서 제일 높은 왈링왈링(Walingwaling), 난초의 여왕 (Queen of Orchids), 필리핀 국조 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독수리인 필리핀 독수리, 열매의 왕 두리안 (Durian), 축제의 축제 (Festival of Festival)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세계 보건 기구는 다바오의 물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좋은 식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다바오 시는 미술, 문화, 여러 부족의 문화 유산물로 풍부하다. 그 중 제일 눈에 띄는것은 바고보(Bagobo), 만다야(Mandaya), 만사카(Mansaka), 마노보(Manobo), 아타 (Ata) 그리고 빌라안(B’laan) 부족들이다.

사실상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제일 많은 부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필리핀 남쪽의 다바오 무역, 교육, 관광, 미술, 문화, 건강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적극적인 지방 자치체의 도움과 여러 부족, 이슬람교도회, 이주자들의 다문화, 다언어의 사람들이 모여 조화로운 에너지를 발산해 이 지역을 사업상, 투자상, 관광상의 수도권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대폭 지원하고 있 다. 다바오 시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언어는 세부아노와 따갈로그이지만 영어 역시 널리 통용된다.

• 바기오
바기오는 1500년 말경 금과 미네랄이 루존 북쪽에 풍부하다는 소식을 들은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이 지역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정복의 실패였지만 1846년 귀얼모데 갈베이 (Guillermo de Galvey) 아래에 위치한 라 트리니다드 (La Trinidad) 골짜기에 정착 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여러 정착지들을 중심으로 벵게트 지역 (Benguet Province)이 생겨나고 예전에 푸리토 카팍웨이(Pulito of Kafagway)라고 불리웠던 현 바기오가 수도로 세워졌다.

1900년도에는 미국에게 정복당했고 그들은 뱅게트와 바기오를 중심으로 정부를 설립하였다. 미국 통치권때 카팍웨이는 도시와 피서지를 설립하기에 적합한 위치로 선정됐다. 지역의 명칭은 번햄 (Burnham) 호수에서 자라나는 초록 이끼를 가르키는 이바로이 (Ibaloi)의 말“베기우 (begyiw)”를 따와 명명되었으며, 1909년에 바기오 시로 확정 되었다.

그로부터 바기오는 “여름 수도”가 되었으며 마닐라가 제일 더울 때(건기) 필리핀 위원회에서는 공무를 여기로 이동하곤 했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미국 식민지때 세워졌던 미국식 건축물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기오는 제 2차 세계대전때 일본 폭격으로 인해 도시가 많이 손상 되었다.

일본 식민지때는 미국 기지, 캠프 존 헤이 (Camp John Hay)가 수비대와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944년, 장군 야마시타 (General Yamashita)가 미국 해방 운동군들로부터 피신하여 북 루존의 바기오에 본부를 세웠다. 해방 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바기오는 미군이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쏜 폭격으로 인해 또 한번 파괴되었다. 그 당시 일본 부대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1945년 9월 바기오에서 장군 야마시타는 미군에게 항복했다. 현재 바기오는 북 루존의 상업 중심지이며 시원한 날씨와 쾌적한 주위 환경을 중시하는 예술가들과 은퇴자들의 선호 거주지이기도 하다.

• 수빅
수빅은 한때 아시아에서 제일 큰 미국 해군 기지가 주둔하였다.



올롱가포(Olongpo)는 수빅 베이 자유 무역항 지역으로서, 산업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교육적 관광으로도 유명한 열대 다우림 외 제스트 (JEST) 숲 길, 수빅베이 무역항, 그리고 면세품이 유명하다. 관광 시에는 등산하는 방법과, 모닥불, 덫, 야생동물 발견법 외에도 외딴 섬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을 교육받을 수 있다. 팜방가(Panmpanga)의 루존(Luzon) 중부지역에 위치했으며 동남아의 미국 공군 본거지다.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45분 거리에있는 클락(Clark)은 경제 특구 지역으로 두개의 골프 코스, 항공 학교, 최고급 호텔, 면세점등이 자리잡고 있어, 휴양 네트워크가 잘 발달되어있다. 몇 년 동안 클락(Clark)은 태평양을 수호하는 미국 파일럿의 공군기지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클락 경제 특구 (CSEZ) 지역으로 많은 관광객의 여행 목적지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바뀌어 가고 있다.

수빅 베이 자유 무역항 (SBF)은 필리핀의 루손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잠발레스 산맥 (Zambales Mountain Range)은 수빅베이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북서부 바타안(Bataan) 반도와 남서부 잠발레스(Zambales)주에 위치하고 있다. 수빅베이 자유 무역항 (SBF)은 북 마닐라 지역에서 110 km 떨어져있다.

수빅의 주위 산맥과 항구는 태풍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보호막 역할을 해주며, 피나투보 산 (Mt. Pinatubo)의 화산 폭발로부터 보호해 준다. 클락은 28,000 헥타르 이상의 규모이다.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앙헬레스(Angeles) 시에 위치해 있으며 팜팡가(Pampanga) 및 남쪽의 마바라캇(Mabalacat)과 북동쪽의 마갈랑 (Magalang)에서 16km 떨어진 곳에 있다. 포락 (Porac)과 플로리다블랑카 (Floridablanca)는 산 퍼난도 (San Fernando)의 북쪽과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 라구나
라구나는 라구네 드 베이(Laguna de Bay)에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라구나는 필리핀에서 제일 큰 담수호로 리조트가 발달된 곳이다. 폭포와 강, 7대 호수, 냉온 온천으로 유명하다.



또한 자연의 경치 외에도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이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히스패닉(Hispanic) 시대의 성당은 현대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전통 미술과 공예품은 아직까지도 마을 곳곳에서 가업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 바나워
바나워(Banawor)는 오래전 지방 자치제의 명칭이었다. 이 이름은‘빠르게 나는 밤의 새’에서 유래되었는데 스페인이 이 지역을 통과하였을 때 바나워에서 바나웨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851년즈음, 스페인은 통치하기 위하여 둑리간 바랑가이(Barangay Ducligan)를 설립하였으나 필리핀 주민들의 적대 행위 때문에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미국인이 그들의 정부를 이곳에 설립 했을 때 첫 지휘자로 제츠 갈만(Jeff Gallman)이 선임됐으며 후임자로는 웰리암 도설 (Col. William Dosserr)과 불란 (Captain Bullan)이 그의 뒤를 이었다.

• 바탕가스
바탕가스(Batangas)는 그 지역만의 지리적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유산으로 유명하다. 현재까지도 몇몇의 마을에서는 고유의 풍습을 지키고 있다. 정교한 자수 공예 및 다른 토속 수공예품은 지방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바탕구에노스 (Batanguenos)의 애국심을 보여준다. 변두리 지역에는 코코넛 숲과, 망고 농원, 과수원이 있다. 19세기에 전 세계로 수출되어 유명해진 검고 감칠맛이 나는 바라코(Barako) 커피가 비옥한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 카비테
카비테는 필리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장소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박물관과 사적지가 있다. 이 지역은 여러 필리핀 애국자들의 출생지이며 1898년 6월12일 필리핀 독립 선언을 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 유산이 많으며 천연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카비테는 필리핀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 중 하나인데, 수출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따가이따이 산등성이에서는 필리핀 경치의 진수를만끽 할 수 있다. 또한 카비테에는 세계 최고의 골프코스, 리조트, 세계 각국의 음식 및 각종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다.